내가 몰랐던 남산





지난 6월 13일 일요일, '등산하는 녀좌당'의 첫 우면산행이 비로 무산된 날.
솔메님과 함께 동네 뒷산인 '남산'에 오르기로 하였다.
금요일 캐나다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는 PSJ의 송별파티를 위해 준비하고 남은 재료들로 다시 김밥을 싸고,
얼음 커피를 타서 첫번째 재대로 된 남산 등산을 시도했다.

이제까지는 남산도서관 앞으로 나있는 버스길을 따라 아스팔트길을 걸었으나,
이날은 그 길을 제외한 다른 길을 걸어보겠다고 시작한 터라
따로 코스를 정하지 않고, 한번도 가보지 않았던 후암약수터쪽으로 방향을 잡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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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암 약수터쪽에서 시작된 계단은 끝도 없이 직선으로 이어져 있었고,
오르는 내내 계단 양 옆으로 키 작은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들이 귀엽게 자리잡고 있었다.
한 서너번 쉬었나?
비온 뒤라 숲은 잔뜩 물기를 머금고 있었고, 습한 때문이었는지 몸이 무거워
가파르지 않은 계단을 한번에 올라가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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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치하게 가위바위보를 하면서 올라갈까 솔메님께 제안했지만 단칼에 거절 당하고,
그냥 쫑알쫑알 수다를 떨며 걸어 올라가니 남산도서관 앞으로 이어지는 버스길과 만나게 되었다.

자전거를 타고 쌩- 하니 내려가는 건강남,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맨발로 걸어 내려가는 연인,
손을 꼭 붙들고 하하호호 즐거이 하산하는 가족,
모자, 선글라스에, 수건으로 얼굴 전체를 가린 채 박상철의 '무조건'을 크게 틀어놓고 운동하는 중년 여성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신나게 산을 오르내리고 있었다.
손수건도 아닌 타올로 얼굴이며 목으로 흘러내리는 폭풍같은 땀을 닦아내는 내가 살짝이 부끄러웠다. ㅋ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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덥다덥다 하면서도 즐거이 오르고 또 오르니 금새 팔각정에 다다르게 되었고,
준비해간 얼음 띄운 맥심모카골드를 맛있게도 먹으며 인증샷 찍어 올리기에 심취하였다.
각자 트위터를 하며 따로 노는 사이,
스머프처럼 파란 티셔츠를 맞춰 입은 수십명의 단체 관광객이 북적거리고,
등산복을 갖춰 입은 중년 남성들이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아이를 데리고 온 젊은 파파는 비누방울을 불어주며 따뜻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20분 정도 땀 식히면서 쉬고 난 뒤, 천천히 하산을 시작하였다.
올라온 길과 다른 길로 가 보기로 합의 한 뒤 서울성곽 쪽으로 난 샛길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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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라온 길과 다르게 나무 계단이나 아스팔트가 아닌 다른 재질의 포장로이긴 했으나
훨씬 키 큰 나무들과 울창한 숲이 이어졌다.
편평한 풀숲에는 한 무리의 중년 여성들이 자리를 깔고 도시락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다음번엔 나도 저 자리 한번...?

빗방울이 채 마르지 않아 맑고 싱그러운 숲길을 걸으며,
어쩌면 이런 공간에 있는 것이 처음이 아닐까 생각될 정도로 황홀했다.
우연히 마주친 청솔모인지 다람쥐인지 모를 작고 귀여운 동물과,
꼬물꼬물 제 갈길을 열심히 가는 벌레들도 함께 그 숲을 만끽하고 있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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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를 걷다보니 방향 표지판이 나왔다.
이왕 올라온 거 다른 길도 구경하자며 서울성곽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솔메님의 표현에 따르면 '자연과 인공구조물이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는' 서울성곽을 넘는 계단을 지나니
또 다시 아름다운 오솔길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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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는 이가 아무도 없는 그 길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 신나고 고마웠다.
비 맞은 나뭇잎들이 카펫 문양마냥 적절하게 땅에 널부러져 있는 오솔길을 따라 또 걷다보니
산 중턱에 '남산산악회'라는 단체의 오래된 건물이 큰 나무들에 둘러쌓여 착하게 서 있었다.
남산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는 각종 운동 기구들과 테니스 코트, 샤워장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정체불명의 구조물까지
재미난 것들이 남산산악회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남산산악회에 대해 검색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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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더 내려오니 어떤 아저씨가 바가지로 물을 떠 마시는 것이 보였다.
PVC 파이프를 대충 꽂아 만든 그 곳은 '상춘약수터'라는 곳이었고, 깨진 파이프 안에는 흙이 고여 있었다.
용감하게 한 모금 마시고 솔메님과 서로 물을 부어주며 손과 팔을 씻었는데, 생각보다 물이 시원하니 상쾌하고 좋았다.
하지만 약수터 앞에 수질검사 결과 부적합하면 마시지 말란 안내는 있고, 수질검사표는 휑 하니 비어있어서 당황. ㅋㅋ
설마 죽기야 하겠어, 그래봐야 설사나 좀 하겠지 하며 다시 룰루랄라 길을 떠났다.

어찌저찌하여 결국 장충동 국립극장쪽으로 하산을 완료하고 나니, 집에 돌아갈 방법이 마땅치 않은 상황이었다.
하얏트쪽으로 내려왔으면 남산순환로를 따라 걷거나 402번, 405번 버스라도 탔을텐데,
국립극장 앞 정류장에는 다른 동네로 향하는 버스나 남산순환로를 운행하는 노란버스 뿐이었다.
집까지 걷기에는 덥고 지친 상태여서, 부끄럽지만 남산순환버스를 타기로 하였다.
결국 버스를 타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다시 남산 꼭대기를 거쳐 남산도서관 앞에서 내렸다. ㅋㅎㅎㅎ
집에 도착하여 씻고 참외하나 깎아 먹는 것으로 마무리!



만만하고 편한 지인과의 세 번째 산행.
솔메님께 감사하고,
이렇게 좋은 뒷산이 있어 감사하고,
6개월을 넘게 고민하긴 했지만 결국 질러버린 고가의 등산화에 감사하고,
묵묵히 산을 올라 준 나에게 감사. :D





첫번째 북한산 등산 (6월 2일 지방선거 날 투표 후)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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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번째 김포 문수산 등산 (6월 6일) 인증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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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17일 목요일 남산 등산 예정 (도라지녀와 함께)
* 6월 20일 일요일 우면산 등산 예정 (마녀좌당 당원들과 함께)





나, 등산하는 녀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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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5 18:19 2010/06/15 18:19
chamsae
동네 2010/06/15 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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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산도서관에서 뛰어내려왔지만 신호가 바뀌어 건너지 못한 소년.

며칠 전 퇴근 후 새로운 나의 사랑 405번 버스를 타고 남산도서관 정류장에서 내렸다. 길을 건너기 위해 버스 정류장에서 횡단보도쪽으로 몸을 돌리는 순간 "딱딱딱딱딱.딱..딱...딱..."하는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아마도 남산도서관에서 공부를 마치고 내려오는 듯 보이는 한 남자아이였다. 횡단보도의 초록색 불이 깜빡이는 것을 보고 전력질주 했지만, 매정하게 빨간색 불로 바뀌어버린 것을 보고, 급제동을 걸었으리라. 그 발걸음 소리가 참 경쾌하게 들렸다.

결국 뒤로 멘 가방끈을 양손으로 움켜쥐고, 숨을 쌕쌕 내쉬는 그 아이는 인도의 가장자리에 반듯하게 서서 신호가 바뀌길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예뻐서 나도 모르게 전화기를 꺼내 사진을 찍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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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26 14:40 2009/06/26 14:40
chamsae
동네 2009/06/26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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